일상의 날들이 무뎌지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생각하며 사는 건 아닐까 라는 두려움이 차오를 때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 화가 신창운!

작년 여름 "욕망의 흔적(Trace of Desire)"이라는 작가의 작품 전시회를 찾았을 때 미술에 문외한인 기자에게도 그 작품들의 메시지는 강렬했었다. 특히 그의 작품들이 그가 불가마 장작을 지피던 화부였을 때 탄생됐다는 설명은 화가가 아닌 인간 신창운에 대한 호기심에 불을 지폈다.

신창운 작가는 장성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농부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초등. 중학교 시절부터 그 지역에서는 그림으로 인정을 받는 학생이었다.

신작가는 광주로 고등학교 진학을 하게 되었고, 집안의 종손이자 장차 가문을 이끌어갈 장손자의 뒷바라지를 위해 할머니도 광주로 손자와 함께 오게 되었다. 이즈음 할머니는 이때까지 누구에게도 이야기해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손자에게 가슴에서 풀어내었다. 이승만 정권하에 사회진보적 이념을 가졌던 신 작가의 할아버지는 어느 날 밤 트럭에 실려 나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총살을 당했다.

할머니 역시 온갖 고문으로 고초를 겪었는데 작가의 아버지 겨우 12살 때의 일이었다. 작가의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의 억울한 희생도 모자라 소위 연좌제란 제도로 인해 고귀한 교직의 꿈을 접어야 했으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농사일밖에 없었다. 한 맺힌 할머니의 가슴에서 전해오는 할아버지의 억울하고 무고한 죽음을 신작가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가족들에게 불어닥친 기막힌 사건들과 시대의 아픔이 감수성 예민한 작가의 영혼에 깊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1988년 전남대 서양학과에 입학한 신작가는 <아리랑> <엉겅퀴> 동아리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작가의 가슴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던 가족들의 한스런 아픔과 상처들이 80년대 광주의 무고한 시민의 희생과 맞물려, 생생한 역사의 현장 한복판으로 그를 나오게 했다. 상처 받고 소외받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신작가는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구축해 나가게 되었다.

이때 작가는 무자비한 권력과 그 권력을 향한 사람들의 욕망, 또 우리 인간의 다양한 욕망들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의문에 사로잡히게 되었는데, 이러한 욕망에 대한 탐구는 <욕망 시리즈>라는 주제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2003년 작가는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인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전남대 인류학과 석사 과정을 밟게 된다.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모든 현상을 상대적으로 보는 인류학의 가치에 자연스럽게 매료되어 교수님의 연구를 보조하게 되면서 두 차례에 걸쳐서 인도 땅을 밟게 되었다.

인류학 박사 과정 중 잠시 휴학을 하고, 작가는 2008년 국가 지원금을 받아서 인도의 박물관, 미술관 인턴쉽 자격으로 인도행이 결정되는데, 이때 인류학과 교수님의 권유로 계획에 없던 가족을 동반해서 인도를 가게 되었다. 그때 작가의 가족들은 경유지인 일본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호텔에서 처음으로 침대를 본 자녀들은 침대를 너무 신기해했고, 놀이기구인 양 침대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자녀들의 모습은 작가를 깊은 상념에 들게 했다.

가난했던 화가 아빠는 가족들에게 물질적으로 변변히 해준 게 하나도 없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고 자녀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한편으론 흐뭇했고 한편으론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날 일본의 호텔에서의 하룻밤은 인도에서 2년 동안의 생활을 끈끈한 가족애로 이끌어 주었으며 , 가족과 함께 많은 추억들을 나눌 수 있었던 작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였다.

2010년 한국으로 돌아온 작가는 8시간 창작, 8시간 노동, 8시간 수면이라는 단순하고 절제된 삶을 통해 작품 활동에 전념하였다. 특히 작가는 작품 활동과 무관한 단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작가가 단순하고 절제된 삶을 선택한 이유는 8시간의 규칙적인 노동이 제공하는 최소한의 수입으로 만족하며 작가의 작품세계를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단순하고 절제된 노동은 작품에 대한 창작 에너지를 불사르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픔은 눈물로 씻고 번뇌는 땀으로 씻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작가는 인도에서 돌아온 뒤 한동안 불가마 사우나 장작가마에서 화부로 일을 했다. 1년이 넘게 새벽에 일어나 장작에 불을 지피며, 활활 타오르는 장작이 재로 되는 것을 보면서 삶의 해답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책이나 매체를 통해서 존경하는 사람을 갖게 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작가의 희망이라고 하는 얘기를 듣고 저절로 기자는 고개가 끄떡여졌다. 작가는 작품의 창작 활동에 전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면서 2년에 한 번씩 자기 점검을 위해 작품 전시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전시한 작품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면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돈으로 평가받는 것에 아직까지는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신작가에게도 이 문제는 영원한 딜레마일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